주일 말씀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요한계시록 9:1~11)

2018-01-14 / 박지덕 담임목사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환상을 본 순서로 기록했다. 인의 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은 갈수록 반복적이면서 강도가 세고 커져 간다. 17장부터 보면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재앙이 나오고 21장부터 새 예루살렘, 새 땅, 새 하늘.. 즉 교회를 보여주는데 교회와 교회 사이에 세상이 있는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가는 천상의 교회가 있다.

나팔재앙 중 1~4번째 까지는 자연파괴를 통한 간접적인 재앙이고, 오늘 보게 될 5번째 부터는 직접적인 재앙이다. 누구에 의해서? 사탄, 마귀, 악한 영을 통하여.. 산천은 변함없이 그대로 일 줄 알았는데 인간들이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지.. 모든 나라에는 법이 있어서 법을 통해 사회를 안정 시키려고 한다.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재판을 받고 그 댓가를 지불하듯이 지구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질서를 어기거나 거부할 때는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재난이 올 때 우리는 정신차려야 한다.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한 사람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만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대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것이다. 신성종 목사님은 지옥을 경험한 후 인도 선교사로 갔다. <내가 본 지옥과 천국> - 보수교단이면서 지옥과 천국 보기를 갈망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셨다. 그래서 책을 통해 간증하게 된다. 이렇게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은 삶이 바뀌고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그 분의 마음이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의 물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은 모두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지은이는 자기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 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구가 파괴되어 병들고 나서야 인간은 자연의 보호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산불, 폭풍이 동반되면서 산사태로 번져 많은 피해를 입었다. 여기까지가 4번째 재앙인 것이다. 재앙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탄은 성경적으로 사회적인 악을 통해 우리를 괴롭힌다. 지옥은 반드시 죽어야만 맛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인간에게 있는 자만심, 교만함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다.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다. 예수님이 오시면 기회는 없어진다. 그때까지 자연을 통해 인간들 속에서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메세지를 놓치지 말자.

1절 - 땅에 떨어진 별 : 사탄, 마귀를 뜻한다.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지.. 땅에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다. 귀신은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굿을 하고.. 무당들이 작두위에서 춤을 추고..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누구로 부터 하나님께로 부터.. 그러므로 사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원래는 천사였는데 타락한 천사가 사탄이다.

2절 - 무저갱은 끝이 없는 구덩이이며 성경에는 음부와 지옥으로 불리어 진다. 무저갱의 열쇠를 주어 열게 하신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활동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리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인인 것을 알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옥은 이 지구 땅 속에 있다. 무저갱은 통로이다. 연기는 '가치관의 혼돈'을 뜻한다. 사탄의 역할은 사람들의 영이 깨닫지 못하도록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이다. 분별을 하지 못하게 하고 불의, 거짓된 것, 악한 것에 대한 의분이 없다.

성경은 어떤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 하지만 우리는 편안함과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십계명 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자신의 욕심대로만 살지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다.

3절 - 황충 : 구약에 보면 곤충으로 메뚜기 종류이다. 애굽의 열가지 재앙 중 여덟번째이다. 황충이 생기면 푸른 것은 남지않고 완전히 폐허가 된다.

그러나 4절에 보면 푸른 것이나 수목은 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셨다. 사람이 공격의 대상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감정들, 희생정신 등을 다 갉아먹고.. 염치도 없고, 수치심도 없고... 세상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 버리면 가슴 아픈 일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해 이기적이게 되고 동정심 없는 태도를 갖게 된다.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바뀌고 감정없는 로봇이 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감정없는 복제 인간을 만들고.. 인간들은 이것을 즐기고 좋아하며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감정이 메말라 파괴적이게 되어가는 것이다. 드라마 등을 봐도 감정이 있으면 인기가 없다. 감정이 없어야 인기 폭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욕하고 해야 인기 있고 그것을 즐기고 더 좋아한다.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에게 남겨 놓은 것이 감정이다.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감정이 메마르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 왕과 성령 충만 했던 다윗.. 우리의 메마른 감정과 상한감정은 우리의 힘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기대를 걸어서도 안된다.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채워진다. 왜냐하면 감정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때 좋은 외모, 학벌 등의 겉모습으로 대상을 바라보지 말고 마음 속에 주를 향한 감정이 있는지를 보라. 감정이 메마른 사람과 함께 살면 고통스럽다. 살인하는 영화나 무서운 영화, 음란한 영화를 자꾸 보면 우리의 감정이 무섭게 파괴되어진다.

비인간적인 공격이 얼마나 많은지.. 악플로 인해 자살하는 연예인, 사소한 일에 살인과 폭력을 일삼고, 음란, 방탕함..이런 것들은 우리의 감정을 황폐화 시킨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감정이 아름답게 보존된 사람이다. 그 아름다운 감정을 보존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황충은 어떤 세력권을 만들어 사람을 괴롭힌다. 전갈은 무서운 곤충.. 독이 강해 죽게된다. 5~9절에 보면 황충은 조직화된 범죄집단이다. 나름대로 질서와 규율이 있고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들.. 사람의 얼굴.. 나름 위엄이 있고.. 여자의 머리털.. 나름 매력이 있고.. 사자의 이빨.. 한 번 물면 놓치 않는 집착도 있다. 황충의 재앙, 즉 사탄, 마귀에 의한 재앙이다. 철 호심경.. 방어 능력이 있다. 정보력이 있고 권력과 밀착되어 있으며 큰 영향력이 있다. 결정적인 것은 꼬리이다.

10절에 보면 죄가 조직화 되어진 특징이 있다. 1517년에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신교가 생겼다. 로마 카톨릭은 자기들은 큰 집이고 우리는 작은 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너무 성경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황충을 마틴루터라고 했다. 개신교에서는 카톨릭이, 교황이 황충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이.. 카톨릭이.. 이슬람이.. 마피아등의 범죄단체가.. 이단이.. 히틀러 정권이.. 지금은 김정은 정권이.. 황충이 되기도 한다. 나름대로 완벽한 구조와 선동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번 쏠리면 너무 가까워진다. 지금 볼리비아에서는 예수에 대한 설교를 하면 엄청난 벌을 주는 법안이 통과 직전에 있다고 한다. 중국은 삼자교회를 허용하면서 삼자교회가 아닌 교회를 박해한다. 교회안에 폭탄을 장치하기도 한다. 온 곳에 황충이 가득하다.

(((중국의 삼자교회란?   삼자교회란 중국기독교(中國基督敎) 삼자애국운동위원회(三自愛國運動委員會)의 약칭이다. 삼자교회의 주장은 "중국 공산당과 인민 정부의 영도 아래 전국의 기독교신도들을 단결하여 조국을 사랑하면서 국가의 법령을 준수하고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의 삼자(三自)를 지지해 나가자"입니다. 삼자교회는 중국정부에 등록하고 모임을 허가받은 교회인데 주님을 모르는체 정부의 간섭대로 움직이는 세속화된 사역자들이 있지만, 오바댜와 같은 복음적이고 헌신적인 사역자와 성도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독교에서 외세를 배격하고 스스로 통치, 스스로 양육, 스스로 전도하자는 말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의 속내는 종교를 장악하여 통제하자는 것입니다.)))

방법은 뭐가 있을까? 안 쏘이는 것이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한다. 또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서 사탄,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다. 죄를 쉽게 생각하고 결국은 조직적인 죄에 당하면서 전갈의 꼬리에 쏘이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가 조절되어지지 않는다. 마치 불이 붙는 것처럼 화가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상식을 넘어서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들이 생긴다. 감정을 조절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안 좋은 것을 많이 봐서 그렇다. 폭력적인 것, 음란한 것 등을 많이 봐서 마음이 황폐해지고 성질대로 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황충이다.

야고보서 3:6에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화는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이다. 교만하여 감정이 메말랐으니 얼마나 지옥 불에서 잘 타겠는가? 예전에는 믿지 않는 일반 정서를 가진 사람들도 하늘을 두려워 하였다. 하나님이 아니고 하늘을.. 교만하면 천벌을 받는 줄 알았다. 요즘에는 다들 교만하기에 교만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세에 일어 날 일이라고 벌써 2000년 전에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분노는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내 안에 분노를 조절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인간이 분노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여라" 라고 하였다. 왜? 주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시는 것이다.

요즘은 말 한마디도 완악하게, 표독하게 말하고 말이 가볍고.. 마음이 메말라서 그렇다. 말과 글 속에 독이 가득하고 그것을 못견뎌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것을 삭이는데 몇 달이 걸리고.. 정제하는 기능이 상실되어 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죽고 싶다는 얘기는 많이했다. 하지만 실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절제력이 상실되었다. 6절에 보면 죽는 것 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너무 고통스러운데 죽을 수 없는 곳이 지옥이다. 구더기 조차도 지옥 불에서는 죽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를 가장 비참하게 하는 것은 인간성 상실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이 현실속에 그래도 감사한 것은 5절 "다섯 달 동안" - 황충의 생존기간인 것이다. 이런 고난과 고통 속에 우리도 서있다. 그 어려움 속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옥이 아닌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저갱의 사자.. 히브리어로는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볼루온.. 뜻은 하나로 "파괴자"라는 뜻이다. "터미네이터", "데볼루션 맨" - 파괴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결국은 파괴자만 남게 된다.

사탄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시키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자연도, 사람의 감정도..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예수닝이 오실때 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두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에 종맣론에 대해 애기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두사람이 맷돌 갈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미선교회 처럼 흰옷 입고 산에 올라가서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던간에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복음 전하고 사명 감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직장을 세워 삶의 터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사탄은 파괴자이지만 교회는 피난처이다.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자들을 향해서 교회가 희망이고 소망이며 그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참 희망이고 은혜인 것을 증거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끝까지 믿음 잘 지키시고 믿음의 걸음을 힘껏 달려가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