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탄식하되 슬피 탄식하라. (에스겔 21:1-17)

2019-08-18 / 박지덕목사


탄식하되 슬피 탄식하라(겔 21:1-17)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범죄가 너무 심각해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분 가운데 인내를 말한다면 ‘바로 나다’라고 말할 분이 있는가?

통계청 '2018년 이혼통계'에 이혼은 10만8천700건으로 전년보다 2.5%(2천700건) 증가했다.

이혼은 2015∼2017년 3년 연속 감소했다가 작년 반등했다.

전체 이혼 중, 신혼 이혼'이라 할 수 있는 4년 이하 이혼 21.4%, 혼인지속 기간 20년 이상

이혼은 33.4%을 차지했다. 4년이하 20년이상 이혼이 전체 이혼의 54.8%을 차지한 것이다.

  통계청 김진 인구동향과장은 "최근 결혼 자체가 줄면서 이혼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작년 동거 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9.7%, 특히 30년 이상은 17.3% 증가하는 등 황혼 이혼이 크게 늘면서 이혼 건수를 끌어 올렸다"고 설명했다.

 

젊은 날에 이혼할 수도 있었는데 왜 중년이나 황혼에 이혼을 할까? 젊은 날에는 그래도 참았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참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젊은 날 참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참을 능력이 되어서 참는 것이 제일 좋다.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참는 것과 같은 참음이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잘못을 저지를 때 꾹꾹 누르고 참았다가 나중에 자식에게 복수를 하는가? 그런 경우는 없다. 이것이 참을 능력이 있어서 참는 경우다.

 

그런데 자녀들 가운데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당한 것으로 인해 나중에 힘이 생기면 부모에게 되돌려 갚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기억해 놓은 것이지 참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참는다 할 때, 참을 능력이 있어 참게되는 경우보다 대항할 힘이 없어서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항할 힘이 없을 때는 참았다가 나중에 힘이 생기면 복수를 생각한다.

이런 것은 진정한 참음이라고 할 수 없겠다. 인간 세상에는 참음에 문제점과 약점이 많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참으심은 어떨까? 적어도 복수를 생각하는 참음은 아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심판의 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의 복수라는 생각인가?

21장 전체에 ‘칼’ 단어가 16번 이상 나온다. 그만큼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가 크다는 것이다.

아마 성경 전체에서 ‘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주로 사용하시는 심판 방법이 세 종류다. 질병, 기근, 전쟁.

오늘 칼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으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칼은 적을 공격하는 칼이 아니다. 자기 백성을 치는 칼이다. 그렇다고 절대로 복수의 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심판하실 수 있다.

복수를 계획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칼은 결코 복수의 칼이 아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여호와의 칼은 어떤 칼인가? 자기 백성을 정신차리게 하는 사랑의 매이다.

 

사랑의 매와 복수의 칼은 완전히 다르다. 복수의 칼에는 그 칼을 맞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나 사랑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 일뿐이다.

그러나 사랑의 매에는 그 매를 맞는 사람의 영혼을 향한 애정, 사랑 소망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과 사랑이 진하게 베여있다.

물론 그 사랑은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있다.

 

겔20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했고,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했고,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통탄하셨다.

구체적으로 우상숭배 통해 하나님을 대적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조상의 관습을 더 좇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이름을 일일이 더렵혔다. 하나님은 거룩을 드러내라고 불러내셨고,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라고 구원해 내셨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거룩하게 살기로 철저히 약속을 했고,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위해 살기로 철저하게 언약식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건강하고, 이것저것 잘 되고, 사방에 적이 없으니까 타락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고난당할 때는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가, 일이 잘 되고 형통하게 되면 영혼이 병이 든다. 영혼이 병이 들면 어떤 현상이 생기나?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앞장 20장에서는 그 진노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스겔/Ezekiel 20:46-48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

"Son of man, set your face toward the south; preach against the south and prophesy against the forest of the southland.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Say to the southern forest: 'Hear the word of the LORD.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am about to set fire to you, and it will consume all your trees, both green and dry. The blazing flame will not be quenched, and every face from south to north will be scorched by it.

 

48 혈기 있는 모든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Everyone will see that I the LORD have kindled it; it will not be quenched.

 

오늘 21장 본문은 불 대신 칼(전쟁)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에스겔/ Ezekiel 21: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언제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을까? 근거가 되는 말씀이 있다.

에스겔/ Ezekiel 20:1

일곱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In the seventh year, in the fifth month on the tenth day, some of the elders of Israel came to inquire of the LORD, and they sat down in front of me.

 

에스겔은 B.C 598년 포로가 되어 7년째 말씀을 받았으니 이 말씀을 받은 때는 B.C 591년이다. B.C591년은 유다가 최종 멸망(BC586)하기 5년 전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에스겔/Ezekiel 21: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Son of man, set your face against Jerusalem and preach against the sanctuary. Prophesy against the land of Israel

 

20:46절의 남,남,남쪽이 유다를 지칭했던 표현이 좀더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성소, 이스라엘 땅으로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성역이 없다. 심판의 칼은 영적자만에 빠진 예루살렘과 우상숭배로 더렵혀진 성소를 향했다. 선민이라는 지위나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특권이 심판에서 면제받을 수 없다.

 

교회도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성역이 아니다. 특권의식에 빠져 자만하게 되면, 언제든지 우상숭배의 덫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행위대로 징계 받을 것이다.

 

에스겔/Ezekiel 21:3,4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and say to her: 'This is what the LORD says: I am against you. I will draw my sword from its scabbard and cut off from you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Because I am going to cut off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my sword will be unsheathed against everyone from south to north.

하나님께서 내 칼(바벨론 느부갓네살 왕)로 이스라엘을 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을 칠 때에 의인과 악인을 같이 치되 ‘남에서 북까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말로 이스라엘 전체 지역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끊어버리겠다고 하신다.

 

칼집에서 나온 여호와의 칼이 집행자(바베론)의 손에 들리면, 인정사정 없다.

모든 육체 즉 고관과 백성,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그리고 선인과 악인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지난 주 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의인은 살 것이고, 악인은 죽을 것이라고 했지 않는가? 그런데 왜 지금은 의인과 악인을 함께 끊어버리실 것이라고 하시나?

의인이나 악인이나 살아 있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예루살렘의 죄악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 앞에서 예외가 없다. 국가와 민족, 교회와 가정은 개인의 의로움이 아니라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악인 때문에 심판이 온다. 그러나 근본적 이유는 의인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심판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창세기/ Genesis 18:23-24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Then Abraham approached him and said: "Will you sweep awa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What if there are fifty righteous people in the city? Will you really sweep it away and not spare the place for the sake of the fifty righteous people in it?

 

아브라함은 6번에 걸쳐 수를 줄여

창세기/ Genesis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Then he said, "May the Lord not be angry, but let me speak just once more. What if only ten can be found there?" He answered, "For the sake of ten, I will not destroy it."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부족해서 불과 유황으로 멸망하였다.

어느 사회든 악인이 있다. 또한 어느 사회든 의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의인의 숫자가 너무 적고 의인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되고 미미하면 그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악인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다수결로 악인이 항상 이기게 되면, 그 사회는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인이 다수결로는 밀릴지라도 바른 삶으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어떤 가정에서는 장례식에서 불교식구들이 대부분임에도 기독교식으로 하는 분들도 있다.

가정에서 그리스도인도의 영향력이 커져야한다. 진리의 삶을 살면 영향력이 커지게 되어있다.

 

우리 사회는 의인과 악인이 함께 있다. 문제는 역병 기근 전쟁의 심판을 받는 것은 의인의 숫자가 줄어들 때 온다는 것이다. 고로 악인이 많다고 욕하지 말고 우리가 의인에 길에 서면된다.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에스겔/ Ezekiel 21:5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Then all people will know that I the LORD have drawn my sword from its scabbard; it will not return again.'

지금 하나님은 극도의 분노와 진노를 ‘칼의 노래’를 통해 나타내시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취소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에스겔/ Ezekiel 21:9-11

9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Son of man, prophesy and say, 'This is what the Lord says: " 'A sword, a sword, sharpened and polished-

10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sharpened for the slaughter, polished to flash like lightning! " 'Shall we rejoice in the scepter of my son Judah ?

 

11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The sword is appointed to be polished, to be grasped with the hand; it is sharpened and polished, made ready for the hand of the slayer.

 

에스겔/ Ezekiel 21:15-16

15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So that hearts may melt and the fallen be many, I have stationed the sword for slaughter at all their gates. Oh! It is made to flash like lightning, it is grasped for slaughter.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O sword, slash to the right, then to the left, wherever your blade is turned.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했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충분한다. 그러나 자기 백성 향해 ‘칼의 노래’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떠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고 찢어진다. 자기백성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하여 매를 들어 바로잡기로 마음에 결단을 내렸지만 막상 그들이 당할 고통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프시다.

 

에스겔/ Ezekiel 21:13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Testing will surely come. And what if the scepter of Judah , which the sword despises, does not continue? declares the Sovereign LORD.'

이것이 하나님의 고민이다.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한심한 족속이기는 하지만 그 족속이 아예 사라지면 어찌할꼬 하시면서 고민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또 하나님에게 시험거리가 된 백성들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맹세하면서까지 언약한 백성인데 엉망으로 살고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심판의 칼이 자신의 백성들을 겨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칼날에 이스라엘의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함께 넘어지는 것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분노와 탄식으로 가득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말 하나님께 고민거리이며 시험거리이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 시험거리가 되고 고민거리가 된 민족은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죽여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그 영혼을 생각하면 연민의 정을 느낀다.

죽이지도 못 하고 살리지도 못 하고 하나님께서 아주 곤혹스러워하고 계신다.

그래서 자기 백성의 죄가 극에 달해 매를 드시지만 그 매를 드시는 심정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에스겔을 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에스겔/ Ezekiel 21:6-7,12,14

6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Therefore groan, son of man! Groan before them with broken heart and bitter grief.

7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And when they ask you, 'Why are you groaning?' you shall say, 'Because of the news that is coming. ... It is coming! It will surely take place, declares the Sovereign LORD."

 

12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Cry out and wail, son of man, for it is against my people; it is against all the princes of Israel. They are thrown to the sword along with my people. Therefore beat your breast.

1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So then, son of man, prophesy and strike your hands together. Let the sword strike twice, even three times

 

에스겔에게 왜 이런 것을 요구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볼 때에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까닭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을 잘 아는 에스겔에게 행동언어를 요구하고 있다. ‘에스겔아, 네가 그런 행동을 취해라. 그 행동이 바로 나의 마음을 알리는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는 선지자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왜 직분자들을 세워주셨는가?

교사의 직분, 집사의 직분, 권사의 직분, 장로의 직분, 목사의 직분을 왜 주셨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서로 알려주고 세상에 알려주라고 세워주셨다.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한 마음을, 때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길까?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다. 그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고, 의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보다 의롭고, 낫다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교만의 죄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슬피 탄식하라고 하신다.

왜 탄식하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해라’고 하신다.

넓적다리를 치고, 손뼉을 치는 행위는 너무나 황당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은 5년 후 전쟁으로 바벨론의 칼에 포위되어 무너질 것이다. 망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 안에 갇혀 부모는 지독한 굶주림으로 자식을 잡아 삶아먹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 끔찍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렇게 찢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가장 잘 알고 있나? 에스겔이다. 그러니 에스겔이 슬피 울고 탄식하면서 손뼉을 치면서 외치고 넓적다리를 치면서 절규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우리 모두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일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슬피 탄식하는 마음이다.

부르짖어 슬피 우는 마음이다. 넓적다리를 치는 마음이다. 손뼉을 치는 마음이다.

 

누구 때문에 슬피 울어야 하나?  

누가복음/ Luke 23:27-28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A large number of people followed him, including women who mourned and wailed for him.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Jesus turned and said to them, "Daughters of Jerusalem, do not weep for me; weep for yourselves and for your children.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말라.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명하신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노라.

너희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는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대신에 너희의 죄와 너희 자녀들의 죄악을 위하여 울어라고 하셨다.

 

먼저는 교만하여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며 비방하는 내 자신 때문에 슬피 울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한심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엉망으로 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슬피 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저렇게 신앙생활 하면 크게 패망하는 일을 만날텐데 어찌하면 좋을꼬?” 하는 아픈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영혼을 향한 애절함이 있어야 한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있는 그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회복되려면 에스겔처럼 슬피 울며 탄식하는 사람이 일어나야 한다.

엉망으로 신앙생활 해서는 얼마 있지 않아 재앙의 날을 만날테니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형제의 재난을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서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용서하겠다고 말씀했다.(렘5:1)

누가 의인인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재앙에 대하여 슬피 울며 탄식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누가 악인인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재앙에 대하여 슬피 울지도 않고, 탄식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의인인가? 악인인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단순히 내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인인 것이 아니다.

악인을 감동시켜 악을 행하지 못 하도록 막지 못 하면 의인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분의 의는 악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의인가? 내가 악인을 불쌍히 여기지 못 하고,

악인의 악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악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악인의 악을 보고 깊이 탄식할 수 있는 하나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 구하자.

 

원래 여호와의 칼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칼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겨누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워할 일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칼로 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실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신이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극심한 형벌인지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기 자녀를 향해 칼을 들고 대적할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겠는가?

우리는 새벽을 깨우며 손뼉치며 기도해야한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탄식하며 가족구원을 위해 나라 안녕을 위해 기도해야한다.

주여, 우리 가정에, 교회에, 우리 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고 악인이 많다고 욕하지 말라. 먼저 내가 의인의 수에 들어가면 된다.

내가 먼저 의로운 삶을 살면 된다. 그렇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