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회복된 복된 가정 (룻기 1:15-18)

2019-05-12 / 박지덕목사


회복된 복된 가정(룻기1:15-18)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오늘은 가정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한다.

설교 후 소설가 전영택 선생이 작사한 559장 찬송을 부를 것인데, 가사의 내용은 이렇다.

1절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절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절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지금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 이 찬송가는 우리의 희망사항이 되고 있다.

 

제가 학생 때나 청년 때, 가정의 달 목사님의 설교는 으레 비슷했다.

‘자녀는 부모께 효도하고,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들 잘 키우고,

형제들은 서로 우애있게 지내라’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성도들 모두 공감했다.

지금은 맞는 말이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 말씀이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전에는 지금처럼 사회구조 가정구조가 복잡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다 참고 순종하고, 극복하고 살았다.

이혼은 꿈도 못 꿨고, 사회 통념 상 어느 정도 부모님께 효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혼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34개국 중 9위이다.

거기다가 재혼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부모들 때문에 상처받고 자라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한 마디로 가정이란 개념이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정말 편히 깃들 둥지같아야 할 가정이 언제부턴가 점점 더 그 본래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가정! 얼마나 정답고 따뜻하고 푸근하고 그리운 말인가?

생각만 해도 달려가고 싶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미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 가정이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떤 처지이든 이 시간 우리의 가정에 대해서, 우리가 앞으로 꾸려갈 가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마음을 다져야 하겠다.

오늘 한 가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소개할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다.

처음에는 어엿한 가정이었는데 이제는 깨진 가정이고 풍비박산된 가정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해, 그 땅에 아주 심한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흉년을 피해 잠시 온 가족을 데리고 유다를 떠나 요단강 건너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

모압에서 얼마간 그럭저럭 살았는데, 어느 핸가 가장 엘리멜렉이 갑자기 병들어 죽는다.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는데, 그 아들들이 거기서 모압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 땅에서 한 십년 쯤 살다 보니 웬만큼 기반을 잡았나 싶었는데, 큰 일 일어났다.

일 이년 사이로 두 아들이 다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 졸지에 과부 셋만 남게 되었다.

과부 셋이 모여 사는 가정을 가정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시작이 우울하다.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고대 세계에서 여자들이, 남자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과부 셋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으며 살 수 있었던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나오미가 자기 가정 속에 닥친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룻기/Ruth 1:20-21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Don't call me Naomi, " she told them. "Call me Mara, because the Almighty has made my life very bitter.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I went away full, but the LORD has brought me back empty. Why call me Naomi? The LORD has afflicted me; the Almighty has brought misfortune upon me."

 

이 내용은 나오미가 모압에서 다시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이웃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한다. 나오미:기쁨 마라:쓰다.

나오미는 지금 자기 실존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부끄럼없이 고백하고 있다.

룻기 1장에만 ‘돌아가다’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온다.

나오미가 입을 열 때마다 "돌아가야 된다, 돌아가야 된다"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오미는 자기 인생과 가정에 임한 어려움의 원인이, 자기 땅에서 떠났기 때문임을 알았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그 땅에 흉년을 주셨을까?

그것은 일종의 훈련이다. 그 훈련 통해 하나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나오미 가정은 그 메시지를 듣기보다 눈앞 고통과 아픔 피해 이방 모압으로 떠났다.

좀 더 편해보려고, 좀 더 행복하려고 유다 땅을 떠났던 것이다. 그것을 회개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한 일을 바라보니 그것은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었다.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의 후손으로 기르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두 아들을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시켰다.

자기 후손들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자기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 믿음으로 다시금 새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나오미의 홀로서기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오미가 돌아갈 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힘도, 젊음도, 돈도, 가족도....

과부된 두 며느리마저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삶의 결단이 그의 행동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는가?

지금 원치 않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되돌아 볼 때 후회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의 주권자이심과 구원자이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과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가 나오미임을 깨달으면 된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된다.

이것이 회복의 첫 단계이다.

 

호세아/Hosea 6:1-2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Come, let us return to the LORD. He has torn us to pieces but he will heal us;

he has injured us but he will bind up our wounds.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After two days he will revive us; on the third day he will restore us, that we may live in his presence.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언젠가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한테

"정말 그럴 줄 몰랐어" 하며 울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오직 믿을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께로 돌아와야한다.

나오미가 자신을 ‘마라’가 부르라고 했지만, 결국 주께 오므로 ‘기쁨(나오미)’을 되찾았던 것처럼

이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원한다.

 

둘째로, 나모미 가정이 회복되고 존귀하게 쓰임 받은 이유는 남다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룻기1장에 '함께'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번(6,7,10,11,18,22) 나온다.

사람은 고통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쉬운 법이다.

지금 이 가정을 보라. 나오미 입장에서 보면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다.

피붙이 손자도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며느리들이 잘 못 들어와서 패가망신했다고 할 수 있다.

 

며느리 룻과 오르바의 입장에서 보자.

좀 잘 살아보려고 유다 집안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 죽고 자식은 없고 남아있는 것도 없다.

소망도 없고, 마음은 얼마나 낙담되겠는가?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세 과부가 함께 일어난다.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룻기/ Ruth 1:6-7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Then she arose with her daughters-in-law to return from the country of Moab, for she had heard in the fields of Moab that the Lord had visited his people and given them food.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So she set out from the place where she was with her two daughters-in-law, and they went on the way to return to the land of Judah.

 

시어머니 나오미가 돌아가려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 함께 가겠다고 두 며느리는 이야기한다.

그 유다 땅은 문화, 풍속, 언어, 종교가 다른 곳이다. 이방인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다.

그럼에도 그 땅에 가려고 함께 일어나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가고 있다.

지금까지 익숙해 있던 것들과 결별하고 떠나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여러분 모압 여인인 두 며느리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다.

신명기/ Deuteronomy 23장 3-6절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No Ammonite or Moabite or any of his descendants may enter the assembly of the LORD, even down to the tenth generation.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For they did not come to meet you with bread and water on your way when you came out of Egypt, and they hired Balaam son of Beor from Pethor in Aram Naharaim to pronounce a curse on you.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However, the LORD your God would not listen to Balaam but turned the curse into a blessing for you, because the LORD your God loves you.

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Do not seek a treaty of friendship with them as long as you live.

 

룻과 오르바는 모압사람이다. 유다로 간다해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할 것이 뻔하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시어머니가 나오미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한다.

간곡한 시어머니의 설득에 서로 소리높여 울고 작별인사를 한다.

결과는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가고,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게 된다.

 

룻기는 성경 66권 중 문학적 장르로 보면 가장 아름답고 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이다.

룻기 1장을 통해 나오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젊은 며느리들에게 그들 자신을 위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시어머니이다.

그 시어머니를 붙잡고 우는 두 며느리의 모습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서로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는 가족들을 하나님은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이러한 이해와 사랑이 있는 가정이 망하는 것을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가정도 이 사랑과 이해가 없으면 부서지고 무너진다.

 

고전 13:7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게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고 했다.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된 것은 바로 그 넘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도 넘쳐흘러 회복되는 복된 가정 되시길 소망한다.


셋째로 이 가정에는 하나님을 믿는 동일한 신앙고백이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동일한 신앙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다.

신앙이 하나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일치감이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다.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더 그렇다.

 

룻기/ Ruth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At this they wept again. Then Orpah kissed her mother-in-law good-by, but Ruth clung to her.

붙좇았더라/ 히브리어로‘다브카’- “굳게 결합하다. 붙들고 늘어지다.”

창2:24절의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와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룻기/ Ruth 1:15-18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Look," said Naomi, "your sister-in-law is going back to her people and her gods. Go back with her."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But Ruth replied, "Don't urge me to leave you or to turn back from you.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stay I will stay. Your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Where you die I will die, and there I will be buried. May the LORD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anything but death separates you and me."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When Naomi realized that Ruth was determined to go with her, she stopped urging her.

룻의 신앙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다.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시어머니 나오미.

나오미가 며느리들과 이야기할 때, 여호와라는 이름을 1장6-18절에서 무려 7번이나 사용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희망 없어 주저앉아 울고 싶을 그 순간에도 절망을 툭툭 털고 일어나

‘내 삶 하나님께 있다. 내 운명 하나님께 있다. 내 축복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며

거친 길 걸어가는 그 시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룻은 하나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오미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부딪쳐도 하나님을 믿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그것이 우리 후손에게 유산이 되어 상속될 것이다.

가정에 어려움과 고난이 올 때, 오히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타낼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족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 자녀라면 우리들 가정은 분명히 회복되는 복된 가정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몸살을 앓고 있다. 원망과 고통과 다툼이 많다.

여러 역사가들이 로마제국의 멸망이 가정의 타락과 성도덕의 타락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가정은 우리가 노력한 것만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같은 가문의 보아스에게 시집보낸다.

그리고 룻이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오벳이라고 했다.

그 오벳이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룻은 바로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그리고 그 혈통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

마태1장에 보면 룻은 당당하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있다.

 

우리 모두 나오미와 같은, 룻과 같은

복된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는 이 시대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