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손에 들린 금잔" (요한계시록 17장 1~5절)

2018-11-11

손에 들린 금잔(계17:1-5)

 

 

우리는 지난주에 사도요한이 본 3번째 환상(17장-20장)의 서론부분을 살폈다.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중 하나가 요한에게 ’이리로 와라‘하여 보여 준 것이,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였다.

 

음녀란 고급 창녀다. 다른 남자들을 유혹해서 음란한 짓을 하고 그 영혼과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이 음녀가 하는 짓이다. 부인들은 이런 여자들을 가장 싫어할 것이다.

이런 음녀는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말아야지 일단 한번 관계를 맺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번 늪에 빠져 버리면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망칠 때까지 죄에 빠져있게 된다. 왜냐면 죄가 주는 단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음녀는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자였다. 15절에 어디에 앉아 있다고 했나?

계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즉 물은, 여러민족, 여러나라, 여러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물 위에 앉았다‘는 의미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출세하려면 이 음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음녀에게 입맞추고 무릎꿇면 빨리 출세한다.

그러나 이 음녀에게 한 번 밉게 보이면 그 때는 이 세상에서 잘 될 것 생각 말아야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실력이나 정직ㅇ로 사는 사회가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나 이 음녀와 가까이 하느냐 하는 것에 이 세상의 출세와 모든 부귀 영화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음녀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 로마의 타락한 정신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한 것이다.

 

그 음녀는 18절처럼 큰 성 바로 바벨론(로마=악한세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계17: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로마에서 출세하려면 얼마나 똑똑하고 성실한지가 문제되지 않는다. 로마의 음란하고 타락한

사고방식에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이 사상을 주장하고 있는 영은 마귀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를 뜯어먹으며 자멸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계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절대 멸망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은 고트족이나 반달족이 로마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의 도덕적 부패가 로마를 멸망케 한 것이라는 것은 어느 역사가나 동일하게 지적하는 내용이다.

 

구(舊) 소련의 붕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르바초프의 용단이 구(舊) 소련을 해체시킨 것이 아니라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타락이 극에 달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윤락녀들이 러시아 여자들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악은 스스로를 괴멸시키고 멸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들을 몰아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 잠시의 쾌락 속에 몸을 던지고 있다.

 

지금의 예배당 짓기 전 바닐라드에 살 때, 거주지에 쥐가 자주 출몰했다. 오래된 집이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쥐틀과 끈끈이를 설치해 놓고 새벽기도 가기 전에 확인하면 꼭 2-3마리는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끈끈이는 가운데 쥐가 좋아하는 치즈나 생선같은 것을 두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 생쥐가 끈끈이에 붙어 잡혀있으면서도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쥐가 끈끈이에 붙었다는 것은 이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 쥐는 그 끈끈이에 붙어 있는 먹이를 먹느라고 자신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톨스토이의<참회록>에 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이 있다.

한 나그네가 메마르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가는데 햇볕은 사정없이 내리쬐며 목은 마르고 입술은 바짝 바짝 타 들어갔다. 온 몸은 지쳐서 흐느적거렸다. 이때 갑자기 난데없는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사자는 발톱을 세우고 커다란 입을 벌리고 한 입에 삼킬 기세로 달려들었다.

나그네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금세 숨이 턱에 닿으므로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마침 마른 우물을 하나 발견하고 까마득하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뛰어 내렸다.

떨어지다 다행히 한 가냘픈 나뭇가지에 '덜컥!' 걸렸다. 정신 차리고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린 채,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번에는 수많은 독사들이 뒤엉켜서 우글거렸다. 먹이가 떨어진 줄 알고 독사들이 전부 머리를 쳐들고 위를 쳐다보는데, 시뻘건 두 혀를 널름거리며 '쉿'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다시 위를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입에 침을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 으르렁' 대는 것이었다. 올라오기만 하면 통째로 단숨에 삼켜버릴 듯 했다.

 

이제 나그네는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른 후 주위를 살펴보니 매달린 나무의 잎사귀에 벌들이 꿀을 쳐놓았다. 그 지경에 처했음에도 배가 고픈지라 나그네는 혀를 내밀어 꿀을 할타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꿀이 달고 맛있었는지 나그네는 자기가 처한 위기의 상황도 잊고 연신 "아이고, 참 맛있구나!"하며 감탄했다.

하지만 매달린 손에 힘이 차츰 차츰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슨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보니 우물 벽의 돌담 사이로 검은 쥐와 흰쥐가 교대로 연신 드나들면서 나그네가 의지하고 매달려있는 가냘픈 나뭇가지의 밑동을 갉아먹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막힌 운명에 처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지금 아주 맛있는 꿀을 드시고 계십니까?

그 꿀은 젊은 날의 향기와 인생의 성공으로 인한 부와 권력 혹은 행복한 가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검은 쥐 흰쥐(밤과 낮) 그리고 고개를 쳐든 독사(심판)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세상이 주는 달콤한 것들을 즐기느라 자신들의 멸망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인 것이다.

 

여러분 왜 성경이 문둥병을 앓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는지 아는가?

한센 병의 가장 큰 위험은 그 분들이 몸에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눈이 시리거나 아파야 한다. 그래야 눈물이 나고 이물질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눈에 말뚝이 박혀도 그 분들은 아픈 것을 모른다. 그러니까 시력이 점점 나빠지게 되고, 손가락 마디가 썩어 들어가는 데도 고통이 없다.

 

고통이 없으니까 약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방치하다 보면 어느 날 손가락이 하나 떨어져 나가고 없다. 코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이 없다. 고통이 없는 것이 복인가?

고통이 없는 것은 저주다.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가 없다.

 

끈끈이에 붙은 쥐는 자신의 위험을 직시하고 그 먹이를 버리고 빨리 탈출을 시도했어야 한다.

우물 속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그 사람은 꿀을 핥아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그 우물에서 나갈 방도를 찾았어야한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바로 그 끈끈이에 붙은 쥐와 같은 존재들이며, 우물 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꿀을 핥아먹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가 베풀어져서

그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봉착해 있는지를 알게 해 주셨다. 눈을 뜬 것이다.

 

내가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이제 그 맛있는 먹이와 꿀에서 눈을 돌려 탈출의 몸부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을 뜨게 된 자들, 위험을 직시하게 된 성도들은 이 땅의 맛있는 것에서 하늘의 보물로 시선이 옮겨진다.

 

마6:19-2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두움에 속해 있는 음녀의 세력들은 어떻게 산다고? 이 땅에 재물을 쌓는 것을 일생일대의 최고의 목표로 두고 산다. 먹이와 꿀이 그들 인생의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반면에 눈을 뜬 자들은 어떻게 사나?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늘에 있는 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늘의 보물'이란 이 땅 위에서 행한 선한 일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면 그 무엇이나 해당된다. 즉 의(義)로운 일을 행하는 것,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 남을 용서해 주는 것, 또한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는 것 등등.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맛있는 먹이와 꿀에서 관심을 돌려, 은혜를 깨닫고 구원 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허락하신 분이 요구하시는 삶을 열심히 경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목적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랑하는 자’가 되어져 가는 것이다.

요일2:10-11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눈이 멀어 어두운데 있는 자들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라고 한다. 이렇게 눈이 멀어 세상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거리가 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계속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험담 하고, 남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하는 사람들은, 지금 전부 사기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느라 눈이 멀어서 하늘의 보물에 계속 먹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3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성령께서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가신다. 요한계시록에서 광야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자’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1260일을 거하면서 양육 받는 곳이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그 음녀가 광야에 있다는 것은 그 마귀의 세력, 음녀는 바로 지금 이 곳에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그 사실을 소홀히 여긴다.

이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예언해 놓은 책이 아니라, 현재를 싸우고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싸우라’는 병서이다.

그러니까 이 광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음녀와 싸워 이기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서 나타나나?

나의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내가 음녀와 싸워서 이기고 있다는 증거다. 에베소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나를 죽여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그 복종의 삶이 내게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음녀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를 미혹하는 그 음녀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실존하는 세력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 매일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계속해서 본문 3절을 보시면 그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데 그 짐승은 붉은 빛 짐승이다.

그런데 그 짐승은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다.

이 짐승은 우리가 13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짐승이다.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똑같다. 이 짐승은 우리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짐승은 12장에 등장하는 용과도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계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이 용은 마귀를 상징했다.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러니까 본문의 그 짐승도 역시 마귀의 사주를 받고 있는 적그리스도, 마귀의 세력이요 그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 역시 그 짐승과 같은 운명 공동체이며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짐승도 붉은 색이고 큰 용도 붉은 색이다. 그리고 음녀도 붉은 빛과 자주 빛 옷을 입고 있다. 이 붉은 색은 성경에서 죄의 색 그리고 사치와 영광의 색으로 등장한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렇게 붉은 색은 죄의 색깔이다. 동시에 붉은 색과 자주색은 부자들만 입던 사치와 영광의 색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에서 만난 자주 장사 루디아는 바로 그 붉은 색 옷감을 취급하는 부유한 무역상이었다. 그러니까 붉은 색은 죄의 색임과 동시에 세상의 힘, 영광, 부, 사치, 허영의 색인 것이다. 그래서 18장에 멸망하는 바벨론도 역시 같은 붉은 옷을 입고 있다.

 

계18: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보라. 여기서도 바벨론이 보석으로 꾸미고 붉은 옷과 자주 옷을 입고 있다고 나온다.

용도 붉은 용이었고 짐승도 붉은 빛이고, 음녀도 붉은 옷을 입고 있다.

그러니까 세상 세력은 항상 힘과 부와 사치로 사람들의 정신을 미혹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모습이다.

 

계속해서 4절에 보면 좀 더 확실하게 그 마귀의 세력이 어떻게 세상을 미혹하는지 알 수 있다.

4절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음녀의 삼박자가 무엇일까? 1)붉은 가운-향수 많이 뿌린. 2)몸에 두른 보석 3)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금 술잔이다. 이 3가지가 빠지면 음녀라고 말 할 수 없다.

 

음녀의 단장은 세상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세상은 무엇보다 잘 입어야한다. 비록 더러운 창녀의 몸일지라도 입고 있는 옷 만큼은 가장 비싼 옷을 입어야한다. 그리고 일단 눈에 띄는 것으로 치장해야한다. 금 술잔은 점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운명에 맡기는 자들이다.

 

그렇게 부와 사치와 힘으로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 음녀, 바벨론(로마)은 손에 금잔을 쥐고 있는데 그 금 잔 안에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 ‘가증한 물건’은 우상숭배와 관련있다. ‘음행의 더러운 것들’은 가증한 것을 재설명한다.

 

엡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그러니까 그 음녀가 가지고 있는 금잔에 들어있는 ‘가증한 것과 더러운 것’은 모두 ‘우상 숭배’, 요한 계시록의 표현대로 하자면 ‘음행’인 것이다.

 

이 말은 음녀와 바벨론, 마귀의 세력은 부귀와 영화와 힘과 화려함을 가지고 세상을 미혹하고, 거기에 미혹 당해서 그 땅의 것들을 좇느라 하나님과 신앙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 ‘음행’을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

 

세상이 입고 있는 옷을 보라. 얼마나 멋있나? 영광과 사치와 부의 색깔인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걸치고, 금 보석 진주로 한껏 멋을 내고, 금잔을 들고 있는 그 자태는 가히 매혹적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준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음녀요 바벨론이며, 적그리스도의 미혹이다.

 

성경은 그 화려한 옷차림의 음녀와 반대로 순결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를 하고 있다.

 

딤전2:9-10(표준새번역)

9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자기를 단장하십시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지 말며,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10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음녀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교회야, 너희들은 음녀처럼 세상의 화려함과 사치에 동요하지 말고 너희는 소박하고 정숙하게 너희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가꾸어라’

 

벧전3:3-4(표준새번역)

3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에 숨은 사람, 즉 속 사람을 온유와 사랑과 화평과 절제와 인내로 가꾸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음녀가 가지고 있는 금잔에 속지 마라.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만 가득 들어 있을 뿐이다.

 

전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미친 마음을 품고 미친 짓을 하다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것을 사랑하라고 음행을 조장하는 음녀의 입술을 조심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며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거짓 가르침을 내 뱉는 짐승의 소리를 분별해 내야 한다.

 

5절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음녀는 3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1)여기서 비밀은 ‘mystery’다. secret=감추기 위한 비밀, mystery=‘알려지기 위한 비밀이다.

2)그 계시될 비밀은 큰 음녀가 바로 큰 바벨론이라는 것인데, 바벨론이 유프라테스 강변의

문자적인 바벨론이 아니라, 다른 곳을 상징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는 지금 로마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바벨론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큰 바벨론(로마)는 인본주의 왕국의 대명사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다.

 

3)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여기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상과 비도덕적인 우상숭배가 나오게 되었다는 뜻이다. 인간의 교만은 항상 모든 더러운 사상과 부도덕에서 시작된다.

 

그 이마에 더러운 이름을 가진 음녀는 우리가 13장에서 공부한 666이라는 짐승의 이름을 이마에 받은 땅에 속한 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계13:16-18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즉 이마나 손에 짐승의 이름을 받은 저주받은 자들의 어미라 불리는 그 세력, 음녀는

금 잔 속에 ‘더러운 것과 가증한 것’을 숨기고 그 잔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세상을 취하게 만들어 미친 짓을 하다가 죽게 만드는 무서운 세력이다.

거기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666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금요일에 열정적으로 설교한 멕시코의 권에스더 선교사가 간증하지 않았는가?

그의 술꾼 폭군 아버지 자살해 돌아가셨는데 영안실에서 보니 마귀, 지옥자식의 얼굴이었다고.

 

그러나 그 음녀의 미혹에 꿋꿋이 맞서서 이겨내는 사람들을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

‘14만 4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계22: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지금 여러분의 이마에는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나?

하나님의 이름인가? 하나님의 자녀 이름인가? 천국백성 이름인가?

자신 있으신가?

 

여러분은 금 보석 진주와 붉은 옷으로 미혹하는 음녀의 화려한 유혹을 잘 이겨내고 계신가?

혹시 금과 보석과 진주가 부족해서 낙심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것도, 욕심낼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 세상을 나그네 인생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인내하면 사는 것이다.

“의인은 예수 이름은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박지덕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