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 (요한계시록 17장14절)

2018-12-02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계17:14)

 

 

 

우리는 지난주 마귀의 세력인 짐승과 음녀가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는 어린양의 전쟁에 관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정리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과 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나 독수리와 같은 사나운 모습으로 전쟁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힘없고 나약해 보이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전쟁을 하신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나? 세상 권력의 실체는 자기가 죽는 방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주로 잔인한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해치는 방식이 아닌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방식, 즉 자기 자신이 죽는 방식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다.

바로 이 차이점을 극명하게 대조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어린양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죽는 방식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진정 승리의 삶이었던 것처럼,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자들도 어린양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요한복음/ John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They will make war against the Lamb, but the Lamb will overcome them because

he is Lord of lords and King of kings—and with him will be his called, chosen and

faithful followers."

 

오늘은 본문 14절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다.

다시 말하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린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비롯해서 요한복음, 요한 1,2,3서 모두 5권을 기록했다.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는 에베소에서, 계시록은 유배당한 밧모섬에서 기록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요한복음과 요한1,2,3서가 요한계시록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본다.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는 AD 90년경.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60년이 지난 후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의 사역, 설교, 기적을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후다.

12사도들 중에서도 사도요한 한명만 남았을 때다.

 

이미 교회는 신약성경 대부분 기록되었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요한이 하나님의 감동 받아 복음서를 기록했다.

대부분 사람들 큰 기대를 하였을 것이다.

왜냐면 예수님 제자들 중 베드로,야고보,요한 3명은 특별한 것들을 많이 경험한 자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사도요한이 책을 쓸 것이라는 소문에, 엄청난 것들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이 밝힌 기록목적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었다.

요한복음/John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믿음‘, ’믿는다‘는 단어는, 마태-14 막-11 눅-9번 언급되는데, 요한-무려 98번이나 언급된다.

한 성경에 한 단어가 98번 언급됨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한다.

한 복음서 안에서 ’믿음, 믿는다‘는 단어가 98번 언급됨은 그만큼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요20:31에서 기록목적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기록목적은, 반은 믿는 것이고, 반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또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예수 믿는 것과 생명 얻는 것은 무슨 관계와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은, 신약에서 믿음(피스티스)을 언급하고 있지만, 각 성경에서 믿음이 약간씩 다르게 언급되고 있다.

 

로마서의 믿음의 정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야고서에서의 믿음의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다.

 

요한복음 안에서 믿음을 어떻게 정의할까?

당시 많은 자료들을 통해 한 가지 얻은 지식이 있다.

당시 AD90년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한 것으로 추정한다.

에베소뿐 아니라 소아시아 지역,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독 관심이 많았던 것이 바로 생명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생명을, 영생을 얻는 것인가? 였다.

 

생명은 굉장히 신비스러운 단어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나? 죽은 사람처럼 보이나?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금방 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배우지 않아도 안다.

그러면 생명이 어디 있나? 머리, 심장, 피, 오른쪽, 왼쪽???

생명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 있는가? 생명의 신비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생명은 만져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은 신비롭다.

 

에베소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역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이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속이는 일들이 많았다. 거짓교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생명은 바로 지식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명,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지식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다.

지식은 아주 특별하고 엄밀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신비하고 엄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신비하고 엄밀한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곳에서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속이는 것이다. 증명할 방법이 없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생명이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질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미혹하고 속였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그 생명을 요한복음에서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요한복음/ John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바로 그 시점. 물질이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있었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1절은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다.

 

요한복음/ John 1:2-3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그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말씀한다.

 

더 놀라운 14절이다.

요한복음/ John 1: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그 영이신 하나님, 인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거하셨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라고 되어 있다.

 

여러분, 그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또 하나의 서신을 보냈는데 그것을 ’요한 일서‘라고 한다.

요한일서/ 1 John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여러분, 초월하신 하나님, 그 영원하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다. 들을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다. 볼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거하셨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자세히 보고 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지 모른다.

영이신 하나님, 초월하신 하나님, 그 높고 높은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온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분이 말씀으로,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신데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들었고, 보았고, 만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씀을 요한은 1:4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한복음/ John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그는 누구인가?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었던, 상상이 아니고 실제였던 그 분은 JX이시다.

이 선언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선언한다.

 

어디인지 몰라 사람들이 생명을 찾아 헤매었지만, 사도요한은 어렵게 말하지 않고 명확하게 말한다. 단순하게 말한다. 분명하게 말한다. 너희가 찾는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그 하나님, 창조자이신, 생명의 말씀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안에

그 생명이 있다고 선포한다. 놀라운 선언이다.

 

그 안에, 예수 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친히 우리 안에 거하셨던,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던 창조자이신 그 예수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생명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그리스도를 가지면, 영접하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믿음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John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요한복음은 믿는 것을 말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것은 신비한 지식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서 예수 믿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모시는 것이다.

가지는 것이다.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의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가지면, 소유하면 예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위해 예수님을 버리면 죽는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붙잡으면,

영접하면 그 안의 생명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에 영원히 산다고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John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Then Jesus declared,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will never go hungry, and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요한복음/ John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면, 영접하면, 예수님을 가지면 예수님의 생명의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우리를 속인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양 속인다.

어떻게 속이나? ’사망이 생명을 삼킨다‘고 한다. ’사망이 생명을 이긴다‘고 말한다. 아니다.

아니다. 고후5:4은 명확하게 말한다.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5:4하

”....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생명이 사망을 삼킨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사망과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겠나?

사망은 생명의 부재다. 생명이 없는 상태가 사망이다. 생명이 없는 상태가 죽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 호흡을 다하고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는 순간 사망에 머무르지 않고, 눈을 뜨는 순간에 예수님의 품안에 안기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사망에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1년 2년 아니다,. 눈 깜박할 시간도 되지 않는다. 사망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망은 생명의 부재다.

그러므로 사망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서 바울은 고전15장에서 자신있게 외친다.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자신있게 선포했다. 이것은 바울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의 선언이다.

죽음이 우리를 묶어 놓을 수 없다. 예수님이 생명이 되셔서 사망의 모든 것을 깨뜨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부활이고 생명이시고, 예수님이 길, 진리,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어떤 죽음도 거부할 수 없다고 요11장 나사로 사건에서 말하고 있다.

 

누가 감히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반대할 수 있을까?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나사로야 나오라!‘ 이 한마디에 죽음은 무너지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또 다른 선언이 있다. ’나의 세상의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예수님을 가지는 순간,

그 예수님의 빛이 나의 빛이 되어서 그 어두움이 물러나기 시작한다.

 

어두움은 무엇인가? 어두움의 실체가 무엇인가?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두움이다.

한국교회가 어둡다고 한다. 누가 한국교회에 어둠을 가져 왔나? 어둠이 빛을 몰아낸 것인가?

어둠이 빛을 이긴 것인가? 어둠을 빛을 삼킨 것인가? 아니다.

분명히 알라. 어둠은 절대 빛을 몰아낼 수 없다.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길 수도 삼킬 수도 없다. 어둠은 빛이 없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버렸기 떄문에 어둠이 오는 것이다. 교회가 다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다. 40일금식기도 아니다.

다시 교회가 빛 가운데 거하는 길은,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다.

교회가 예수님을 버리는 순간 교회가 복지센터가 되고, 성공학을 가르치면서 교회는 더 어두워지게 될 것이다.

 

어두움을 좇아내는 방법이 무엇인가? 어두움과 싸우는 것인가? 어두움과 싸우지 말라.

어두움은 실체가 아니다. 어두움과 싸우면 백전백패다.

어두움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빛을 가져 오는 것이다.

빛이 오면 빛이 오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어둠은 물러간다.

빛이 빠른가? 아니다. 어둠이 더 빠르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빛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가?

내가 빛이라고 선언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기 시작하면, 교회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예수가 생명이 되기 시작하면,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그 생명으로 충만해지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진리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예수님을 가지는 순간, 그 안의 진리가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이 물러가는 것이다.

 

어떻게 목사 장로가 거짓을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교인들이 거짓을 말할 수 있는가?

재정과 학위와 학벌과 자기배경에 대해서 거짓을 말할 수 있는가?

이유는 하나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없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것에, 유명한 것이 속지 말라. 예수 믿는 것이 입에 있지 않다.

요한복음이 무엇을 말하나? 예수님을 믿은 것은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나의 것이다. 그 빛이 나의 것이 되고,

그 선한목자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내 안에서부터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생수의 강이 내 안에서부터 흐르게 된다.

그분이 내안에 내가 그분 안에 있으면, 그분은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그분의 모든 은혜가 내게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 예수님께 나아가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말에 있지 않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가지고, 소유한 사람이 예수님 생명을 가진 자이다.

이런 분들은 계시록 17:14에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악한 사탄마귀를 어린양과 함께 이긴다고 했다.

 

이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하라.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어린양 예수님으로 가득차길 바란다.

 

 

 

 

 

 

박지덕 담임목사